내 몸 안의 미생물이 음식을 고른다?
요즘 들어 ‘장 건강’이라는 말이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장이 내 몸의 면역을 책임진다는 말이 대두되면서 장건강을 지키기 위해 아침마다 유산균을 챙겨 먹거나 요거트를 매일 먹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을 건강하게 유지한다는 게 단순히 소화를 돕는다는 수준은 아닙니다. 우리 몸속 장에는 수십 조 개에 달하는 미생물이 살고 있고 이들이 우리가 먹는 음식, 느끼는 기분, 심지어 질병 발생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최근 푸드테크 분야에서는 이 미생물 데이터를 분석해 식품 개발에 직접 활용하려는 흐름이 활발합니다. 이러한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정보는 푸드테크가 주목하는 핵심 데이터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동안 식품 산업은 대부분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음식’을 만드는 데 집중해왔지만 이제는 개개인의 몸속 미생물 환경에 따라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가 중요해진 시대가 된 것입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이 뭔데 그렇게 중요한 걸까?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의 장, 피부, 구강 등 다양한 부위에 서식하는 미생물 군집을 뜻합니다. 그중에서도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가 먹는 음식을 분해하고 비타민을 생성하며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최근에는 뇌 건강, 비만, 당뇨, 우울증과의 연관성까지 속속 밝혀지며 단순한 소화 보조 역할을 넘어선 '제2의 장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미생물들의 구성은 사람마다 크게 다릅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누군가는 에너지원으로 잘 흡수하는 반면, 누군가는 체지방으로 더 쉽게 전환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가 바로 마이크로바이옴 다양성에 있다는 연구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런연구를 토대로 사람마다 다른 장 환경을 분석해, 그에 맞는 식단이나 영양제를 제공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습니다.
장을 분석해 맞춤 식품을 만드는 푸드테크 기술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식품 기술의 핵심은 데이터 수집과 해석입니다. 요즘엔 간단한 검사 키트를 이용해 장내 미생물 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량의 대변 샘플만으로도 장내에 어떤 미생물이 얼마나 있는지를 분석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유해균과 유익균의 비율, 장내 염증 수준, 탄수화물·지방 대사 능력까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 데이터는 다시 AI 분석 기술과 결합되어 사용자에게 맞는 식품을 추천하거나 아예 해당 장 환경에 맞춘 맞춤형 건강식품을 제조하는 데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탄수화물 대사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는 당지수가 낮은 식단을 제안하고, 유익균이 적은 사람에겐 특정 섬유질이나 발효식품을 추가하는 식의 식단을 제공합니다. 또한 이 분석을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 유산균 캡슐이나 장내 환경에 맞는 맞춤 프로틴, 식사대용 제품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예전 같으면 병원에 가야 했을 정밀한 장 정보가 이제는 집에서 편하게 검사하고 식단에 반영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기술을 실제로 구현하는 기업들
미국, 영국,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마이크로바이옴 기술이 빠르게 상용화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DayTwo라는 회사는 이 회사는 장내 미생물 데이터를 분석해 개인에게 최적의 식단을 설계하고 혈당 반응을 예측해 당뇨 관리까지 연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영국의 Zoe도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유전자 정보와 장내 미생물, 식습관 데이터를 결합해 맞춤형 영양 리포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바이오푸드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기존 유산균 업체들도 사용자의 건강 데이터를 수집해 균주 추천 알고리즘으로 ‘개인별 맞춤형 유산균’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제품은 더 이상 단순한 건강식품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개인화된 솔루션으로 바뀌는 추세입니다.
기술이 다는 아니다 – 남아 있는 한계들
하지만 이 기술이 무조건 모든 사람에게 정확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내 미생물은 사람마다 차이가 너무 크고
하루에도 수만 번 변화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분석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도 변동성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현재 대부분의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식품들은 보조 식품수준에 머무르고 있어서 실제 질병 예방이나 치료 효과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경우도 많습니다.
게다가 개인정보 보호 문제나 생물정보 윤리 문제도 기술 확산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즉, 이 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기술만큼이나 정확한 해석, 소비자 교육, 규제 기준이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에 대한 신뢰를 얻기보단 일시적 유행에 머무를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사람들은 기술이 복잡하더라도, 결과가 실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국 이 기술이 실생활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이해하고, 수용하고,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데이터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데이터가 내 일상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실제로 먹는 음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이크로바이옴 식품은 아직 생소하고 검사 과정도 번거롭다는 인식이 있어 대중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에 맞는 음식을 찾으려는 수요는 계속 높아지고 있고 기술과 소비자 간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습니다.
내 몸이 선택한 음식, 장이 먼저 아는 시대
우리는 내 몸에 어떤 음식이 맞는지를 미각이 아니라 ‘장’이 알려주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단지 고기 대신 식물을 먹는 차원의 변화가 아니라 내 몸 안의 미생물들이 선택한 음식이 내 식탁에 올라오는 시대 말이죠.
푸드테크 기술은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반응을 읽고 그에 맞는 음식의 조합을 제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식품 생산을 넘어서 ‘나에게 맞는 음식’을 설계하는 기술로 확장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이크로바이옴은 그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 작은 미생물 세계가 우리가 먹는 것을 바꾸고, 건강을 다르게 정의하며, 나와 음식을 더 가까이 연결 해주는 연결고리가 됩니다. 앞으로의 식문화는 더 개인화되고 더 섬세하게 변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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